저는 간호사입니다.
3월에 가슴에 품고 다니던 사직서를 던지고 미련 없이 병원을 나왔고,갑자기 멍하니 앉아 15년 가량의 간호사 생활을 돌아볼 계기가 생겼습니다.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거지 별거 있나 싶다가도 '난 왜 멍청하게 이 길을 간다고 했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절대 가지 말아야지'라는 결론에 늘 다다릅니다.
15년의 시간이었으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울일도 많았습니다만 아픈 사람인 환자를 미워할 수도, 간호사는 당연히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서비스직이라 여기는 보호자를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간호사를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나이 든 의사에게도 쏘아붙이는 말한마디 할 수 없는 처지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오롯이 가슴에 맺어두고 살다 보니 제 자존감은 바닥이 되고 스스로를 원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일일이 가슴에 담아두면 너무 힘들어 지기에 대부분의 일들은 잊고 살려고 애를 씁니다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간호사들은 출근을 하면 인수인계를 합니다. 근무시간에도 포함시키지 않는 무임금 노동타임입니다만 보통 출근시간 앞으로 한 시간, 퇴근시간 뒤로 한시간 정도입니다.
환자에 대한 인계와 인수, 물품에 대한 인계와 인수. 환자가 이상이 없고 입원한 환자가 없다면 10~20분가량 짧아지기도 하지요. 그러면 그날은 무척 행복한 날입니다.
하루는 출근을 해 인수준비를 하고 있는데 입원실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겁니다.
뛰어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다른 할머니의 옷을 벗기며 소리를 지르고 계셨습니다.
"왜 이러시냐"라고 물으니 옷 벗김을 당하는 할머니께서는 황망해하시며 "난 몰라~ 이 여편네가 미쳤는지.. 어휴~"
화를 내며 소리 지르는 할머니께 물으니 "아니~ 이 할망구가 내 새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잖아"
"?"
"이 옷 봐. 이 옷에 꽃 보이지? 이 꽃을 타고 우리 **가 온다고~ 그걸 알면서도 이*이 이 옷을 입고 있는 거라고" 하시며 계속 옷을 뜯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지라 병실을 조정해 서로를 떼어놓고 주치의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보호자와 이야기해 정신과 진료를 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어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님 보호자 되시죠?"
"그런데요. 아침부터 왜요?" 아침부터 전화 온 게 불만인지 톡 쏘는 목소리네요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주치의 선생님께서 정신과 진료를 좀 봤으면 하셔서요"
"야~~(샤우팅입니다) 이 ***아. 그럼 우리 엄마가 미쳤다는 거야?"
제가 뭘 했다고 저한테 그런 욕을ㅜㅜ
"설명드렸다시피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치매 증상인지 다른 질환으로 인한 건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뭐 이런 강아지 같은*이 있어? 그러니까 니 *말은 우리 엄마가 미쳤다는 거잖아 지금~"
"흥분만 하지 마시고 설명을 마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뭐 이런*이 있어? 내가 지금 흥분하는 걸로 보이니?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이*** ***** **** ****************"
내가 가서 너 죽여버릴 거니까"
끊겠다고 하니까 끊어도 병원 찾아와 죽여버리겠다고 하더군요.
인정하고 싶지 않을수는 있습니다. 속상할수도 있겠지요. 아니길 바랄수도 있구요.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써 봅니다만,
생전 처음 듣는 욕설들이 이어져 멍하며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전화 끊을 생각도 못하고, 몇 분간 폭언을 당하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보호자가 먼저 전화를 끊고 난 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고, 이후 처치실안으로 들어가 펑펑 울었습니다.
잠시 후 병원 원무팀에서 찾아 내려갔더니 보호자에게서 전화가 왔더랍니다.
'어떤 미친 간호사 *이 우리 엄마한테 미쳤다고 하니까 그 *** 당장 자르라고 안 자르면 내가 민원 넣을 거라고 하며 원장 전화번호 대라'라고 하더랍니다.
자초지종을 묻기에 이야기했습니다.
괜찮냐고 할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 있으면 녹취를 해요. 말로만 그런 일이 있고 상대방이 욕했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수 있겠냐? 선생님이 먼저 상대방 기분 상하게 잘못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 거다"라며 저를 나무라더군요.
사무실 업무용 전화에 녹취할 수 있는 기능도 없거니와 그 멘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내 전화기에 대고 녹음을 하라는 이야기인가 지금?
"일단 보호자분 께서 화가 많이 나셨으니까 죄송하다고 전화하자."라고 하더라고요.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사과를 시켜 시끄럽지 않게 무마하려는 병원 측의 대처가 더 속상했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뭘까? 어떤 존재일까? 우리 부모님께서는, 남편은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걸 알까?
왜 간호사가 되어 이곳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는 걸까?
이럴 땐 그냥 사람 말고 기계랑 일하면 좋겠다.
그렇게 전화로 광분하던 보호자는 상담 겸 병원을 방문해 달라는 요구에도 끝내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저에게는 간호사가 아니고 싶은 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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